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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526]<연대단체>21대 대선후보자 주거 공약 관련 천주교 빈민사목위원회의 논평

# 21대 대선후보자 주거 공약 관련 빈민사목위원회의 논평


2025년 한국 사회에서 집은 무엇을 뜻할까요? 누군가에게 집이란 가족, 안식처, 보금자리인 반면, 어떤 이에게는 월세 체납, 임시거처, 시설, 고시원, 쪽방일 것입니다. 자가 여부, 나이, 계층, 성별, 장애 여부에 따라 집은 환대의 자리에 놓일 수도 있고, 계급을 구분하는 장치로서 작동하거나, 배제의 기재로서 사람을 쫓아내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6.3 대선이 가까워져 옴에 따라 대선 후보자들이 주거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주요 후보자들의 공약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1) 민간주택 공급활성화를 위하여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주택공급을 늘리고자 하는 반면 2) 세입자 권리 보장이나 3)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주거복지 정책은 미약하거나 아예 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 이재명 후보

- 공공임대주택 확충: 품질 개선, 비율 확대

- 세입자 보호대책: 전세보증제도 개선

- 주거취약계층 대책: 없음


○ 김문수 후보

- 공공임대주택 확충: 없음(세재 감면, 대출 규제 완화 등 민간을 통한 주택공급에 초점)

- 세입자 보호대책: 없음

- 주거취약계층 대책: 없음


○ 이준석 후보

- 공공임대주택 확충: 없음

- 세입자 보호대책: 없음

- 주거취약계층 대책: 없음


○ 권영국 후보

- 공공임대주택 확충: 공공재건축, 녹색 공공임대주택 공급

- 세입자 보호대책: 전세사기 피해구제 및 예방대책 수립, 임차인 계속 거주권 보장 등

- 주거취약계층 대책: 최저주거기준 미달 주택의 임대금지


‘권리로서의 집‘이 부족한 까닭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모두 체감하다시피, 그동안 집은 시장질서를 통해 거래되는 상품으로서 역할을 공고히 해왔습니다. 국가는 자가 소유를 장려하기 위해 규제를 풀었으며, 개별가구는 ‘이번이 막차’라는 심장으로 영끌을 통해 자금을 있는 대로 끌어모아 집을 구매했습니다. 반면 권리로서의 집은 담론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2025년 대선후보자들의 공약 중 권리로서의 집을 제시하거나 주거복지 강화와 관련된 공약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에서도 권리로서의 집이 한국사회에 사실상 부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국가가 앞장서서 주거권으로서의 집을 마련하는 대신, 주택금융화 정책을 통해 자가소유 경로를 제시함으로써, 사람들을 자가소유 정책에 일방적으로 포섭한 결과입니다. 이로인해, 집을 소유하려는 수요는 높아졌으나, 자가소유에 의한 사적복지의 수단으로 집을 공고히할수록, 가격은 수직상승했으며, 높아진 가격은 더 많은 이를 집에서 내쫓았습니다. 국가의 자가소유 일변도 정책이 역설적으로 사회 구성원들에게서 집을 앗아간 것입니다. 집이라는 상품에 낀 거품은 다주택자로 하여금 더 많은 집에 투자하도록 부추겼고, 그 욕망의 사회적 크기만큼, 부동산 질서 바깥의 존재들, 정책대상으로서 호명되지 못한 이들은 주변화되었습니다. 세입자와 주거취약계층에게 집이란 ‘이번 생애에는 다다르지 못하는 것’이며, 이들의 집에 대한 권리요구는 존재하지 않는 목소리, 실패자들의 변명쯤으로 치부되었습니다.


집이 없는 자도 집에서 살아야 한다


따라서 이제는 세입자라는 상태를 벗어나게 하기 위한 정책 수립이 아닌, 세입자임에도, 세입자이기 때문에 더욱 안정적인 기간 동안 쾌적한 거처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주거정책으로 전환이 필요한 때입니다. 단순히 특정 계층에게 조그만 혜택을 시혜적으로 주는 선심성 공약이 아닌, 시장질서에 포획되어 있는 집을 풀어주고, 공공성을 강화하는 정책으로 방향 전환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공공임대주택 확충이 필요합니다. 공공임대주택을 통해서, 사회적으로 배제된 이들도 보금자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정책이 제시하는 자가소유 경로를 따를 수 없는 이들의 권리를 공공임대주택을 통해 실현해야합니다.

국가의 세입자 보호정책이 강화되어야합니다. 2025년 대선후보들은 거의 대부분 청년의 자가소유를 장려하기 위한 정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청년을 위해 대출한도를 늘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청년 10명 중에 9명은 세입자이고, 대출을 받을 여력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부에서 제시하는 자가소유 경로에 진입 자체가 불가합니다. 한편, 반지하·옥탑방·고시원을 드나드는 청년에게 무리한 대출을 종용하는 것 자체가 ‘이 나라에서 세입자는 못 할 짓이야’라고 국가가 나서서 자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제 자가소유 일변도의 주거정책에서 벗어나 세입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정책으로 전환하여, 제2의 깡통전세, 전세사기대란을 예방해야 합니다.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주거복지를 강화해야 합니다. 주거급여의 보장성을 강화하고, 지원대상을 확대해야 합니다. 쪽방, 고시원 등 비주택 거주자를 위해 최저주거기준을 개선해야 합니다.

대출 규제 완화, 재개발 재건축 규제 완화는 투기를 촉발함으로써, 집의 가격을 상승시킵니다. 이를 통해 우리사회가 학습한 것은 집이 조장하는 사회적 불평등 심화입니다. 따라서 욕망으로서의 집에 재갈을 물리는 △재개발 재건축 규제가 필요하며 △무분별한 주택금융을 제한해야 합니다. 시장에 돈이 많이 풀릴수록 집은 보금자리로서의 역할을 거부하고, 취약계층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몰아내며, 사람이 존재해야 할 자리에 더 많은 자본을 끌어들입니다. 취약계층이 규제완화를 통해 안정적인 거처를 마련했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가 없습니다. 거품은 허구이고, 우리 곁에 있는 존재를 삭제하는 익명의 욕망이기 때문에 안전장치가 필요합니다.


파스카: 가난한 사람을 포용하는 집을 찾아 나설 것


6월 3일 무주택자의 날, 우리는 21대 대선을 치릅니다. 전임 교황 프란치스코는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정치 참여는 포괄적인 사랑”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교회라는 주체로서 우리는 정치 행위를 통해 가난한 사람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후보,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며, 공공선을 추구하는 후보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진정한 성찰의 시작은, 이번 대선의 주요 후보자 가운데 주거복지에 대해 공약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에서부터, 교회 안에서 주거권에 대한 목소리는 너무나 미약하거나 생소하기까지 해서, 교회가 이 문제를 다루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팽배해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이야기하는 구원이 부분이 아니고, 한 사람 전체에 대한 문제이듯이, 복음은 당연히 지금 이 시대의 사람 전부에 대해서, 그 사람이 살아가는 집에 대해서 다루어야 합니다. 어느 종교에서나 말할 법한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본질서가 재편하고 구획하는 배제의 세계로부터 우리가 집을 구원해야 한다고, 복음적 공간으로서의 집을 회복하자고, 명료하고 구체적인 목소리로 선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교회에게 집은 하나의 파스카입니다. 이 파스카는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합니다. 상품으로서 폭주하는 집을 버리고 떠날 것을, 가난한 사람을 포용하는 집을 찾아 나설 것을, 존재하는 이라면 모두 권리로서 집을 보장받는 사회에 대해 이야기할 것을, 교회가 주거권에 대한 목소리를 활발하게 유통하여 주거권 운동의 주체로서 자리매김하라고, 명령합니다.

먼 곳이 아닌, 바로 우리 가운데에서, 관계의 총체로서의 집을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집이 얼굴과 얼굴을 마주(1코린 13,12 참조)하는 매개로 이 사회에서 작동하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이득을 볼 수 있을까 고민하는 집 대신, 어떻게 하면 한 사람이라도 빠짐없이 더 포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집에서, 우리 모두가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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