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임대차 3법’? 임대인 실거주 주장 앞에선 ‘무용지물’입니다
임대차보호법, 세입자가 2년 더 살 수 있게 해
지난 2020년 7월과 8월 국회에서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 인상률 상한제, 전월세 신고제를 도입하는 이른바 ‘임대차 3법’이 통과됐다. 그 가운데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신설된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인상률 상한제는 급격한 전월세 가격 인상으로 고민이 깊은 세입자들에게 단비와도 같은 반가운 소식이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이 1981년 처음 제정될 당시에는 보장된 임대기간이 1년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1989년 심각한 전세난으로 세입자들이 길거리로 쫓겨나고 그 과정에서 세입자의 자살이 이어지자 임대기간을 2년으로 늘렸다. 임대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연장됐지만, 그때마다 집주인의 요구만큼 임대료를 올려주거나 이사해야 하는 세입자들의 처지는 바뀌지 않았다. 2020년 7월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인상률 상한제가 도입된 건 무려 31년 동안 이어진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함이었다.
계약갱신청구권은 주택임차인이 2년의 임대기간이 끝났을 때 집주인에게 계약을 2년 더 갱신하겠다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전월세 인상률 상한제는 계약을 갱신할 때, 임대인이 임대료를 5%만 올릴 수 있도록 제한을 두는 것이다. 세입자가 적극적으로 집주인에게 2년 더 살겠다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된 것이다. 비록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할 기회가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았지만, 세입자들로서는 최소한 4년 동안은 예측 가능한 임대료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거주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내가 살 거다’ 집주인 한마디에 나가야 하는 세입자
그런데 실제 상담을 해보면 ‘임대차 3법’에 대해 집주인들 못지않게 불만을 갖는 세입자들이 의외로 많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규정된 갱신거절 사유 때문이다. 특히 임대인이 임차인의 계약갱신을 거절할 수 있는 9가지 사유 중 ‘임대인(임대인의 직계존속·직계비속 포함)이 목적 주택에 실제 거주하려는 경우’ 조항에 대한 불만이 높다. 즉, 집주인 본인이나 부모님, 자녀가 들어가서 살겠다고 하면 세입자는 계약갱신을 할 수 없다.
집주인이 실제로 그 집에 들어와서 살아야 할 사정이나 의사가 있다면 임대인의 재산권 행사를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임대차계약의 갱신을 거절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 문제는 실거주 의사가 없으면서도 임차인을 내보내고 시세에 맞춰 새로 임차인을 들이거나 또는 매매 목적으로 임차인에게 허위로 실거주를 주장하는 경우다. 세입자로서는 자신이 이사가지 않는 이상 집주인의 실거주를 알 수 없으니 임대인의 말을 믿고 어쩔 수 없이 이사를 가야 할지 아니면 소송을 각오하고 버텨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주택세입자 법률지원센터 세입자114’(이하 세입자114)가 2021년 6월부터 주택세입자들을 상대로 매일 오전 2시간씩 전화 상담을 한 결과, 113건 중에서 계약갱신 관련 상담이 36건(약 32%)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보증금 회수(25건), 수선·하자(19건) 순이었는데, 그만큼 계약갱신 관련한 세입자들의 고충이 컸다는 뜻이다.
임대인이 주장하는 실거주 사유는 다양하다. 그 중에는 이직, 자녀의 진학·취업, 임대인 본인이 거주 중인 집의 임대기간 만료 등 나름 믿을 만한 사정도 있다. 반면, 임대인이 처음부터 집을 팔려고 작정하고 공인중개사에게 매물로 내놓거나, 임차인이 5%를 초과해 시세대로 임대료를 올려달라는 요구를 거부하자 임대인 본인이 들어와서 살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30평대 아파트에 가족과 함께 사는 임대인이 원룸인 임차주택에 들어오겠다거나, 지방에서만 20년 이상 거주하던 임대인이 갑자기 서울로 올라온다든지, 심지어 외국에 있는 임대인이 귀국해 살겠다고 하는 등 일반적인 상식으로 믿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나아가 실거주 사유나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제시해달라는 세입자 요구에 ‘내가 들어가서 살겠다는데 무슨 설명이 필요하냐’, ‘사생활 문제여서 대답해줄 수 없다’고 하는 등, 막무가내로 갱신 거절을 우기는 임대인들도 있었다. 이러한 임대인의 주장에 대해 법에서 인정한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하겠다는 세입자들도 간혹 있다. 하지만 다수는 임대인과의 갈등, 소송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 때문에 갱신을 포기하거나 임대인이 올려달라는 대로 임대료를 올려주고 재계약을 선택했다.
전세대출을 받은 세입자들 중에는 대출계약 연장 시 임대인의 동의서 제출을 요구하는 금융기관의 조항 때문에 계약갱신권 행사를 포기한 사례도 있었다. 이들에게 법률이 인정한 권리를 현실에서 제대로 보장받기 어렵다는 점을 설명할 때, ‘법이 뭐 그러냐’, ‘세입자 보호하는 법이 맞냐’라는 말을 들을 때 변호사로서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집주인이 실거주할 의사가 없음을 세입자가 입증하라고?
최근 법원의 판결들을 보면, 임대인의 실거주를 이유로 한 갱신 거절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임대인 등의 실거주는 다른 계약갱신 거절 사유와 달리 임대인의 주관적인 사정에 기초한 것으로서 적극적으로 입증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으므로, 심리를 통해 임대인에게 실제 거주할 의사가 없었다는 점을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가 아닌 한 임대인에게 실제 거주할 의사가 있다고 인정함이 상당하고, 다만 사후에 실제 거주할 의사가 없었음이 밝혀진다면 이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정하는 손해배상문제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집주인이 실제 거주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세입자가 입증하라는 것이다.
물론 법원의 판단처럼 세입자가 이사를 나가지 않은 상황에서 임대인이 실거주 하려고 했다는 점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점을 이유로 임차인에게 입증 책임을 부담시키는 법원의 판결은 선뜻 공감하기 어렵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는 임차인이 계약갱신을 요구할 경우 임대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지 못하도록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예외 사유를 규정하고 있기는 하나, 원칙적으로 임차인의 계약갱신을 보장하되 예외적인 경우에만 임대인이 갱신 거절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즉, 예외사유일 경우, 임대인이 실거주를 입증하도록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법원은 사후 임대인의 실거주 의사가 없음이 밝혀지면 손해배상으로 해결하라고 하지만, 실제 사정을 들여다보면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는 임대인이 실거주 사유로 갱신을 거절한 후 2년 이내에 정당한 사유 없이 제3자에게 다시 임대한 경우 임차인에게 손해배상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법에서 규정하는 손해배상금액은 작은 액수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보증금 4억원이었던 세입자를 내보내고 5억원에 새로 세입자를 들인 경우 손해배상액은 최대 750만원 정도이다. 그러니 집주인 입장에서는 설사 허위로 갱신거절한 사실이 드러나도 갱신 거절 후 임대료를 올려 새로 세입자를 들이는 것이 더 이익인 셈이다. 나아가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는 임대인이 실거주 사유로 갱신을 거절한 후 제3자에게 주택을 매도한 경우에 대해선 손해배상 규정을 두고 있지도 않다. 2년이라는 기간을 포기하고 이사를 간 세입자로선 제대로 된 보상도 받을 수 없으니 여러모로 억울할 수밖에 없다.
세입자 권리 보호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해야!
몇 년 전 외국의 임대차 제도를 연구할 기회가 있었다. 독일, 프랑스, 일본, 미국 대도시에서는 임차인이 원하는 기간만큼 계속 임대차계약을 갱신할 수 있고 임대인이 갱신을 거절하거나 계약을 해지하려면 정당한 사유를 입증하도록 하고 있는데, 그 사실을 처음 알고 충격을 받은 기억이 난다.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대도시 인구집중으로 인한 주택부족과 임대료 폭등은 유럽, 미국 대도시에서는 이미 1960년대부터 발생했던 문제다. 이로 인해 서민, 중산층의 주거가 불안해지자 임대차 갱신제도를 통해 임대차기간을 장기화해 임차인의 주거를 안정시키고 임대료를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는 등 임대료 안정화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쳐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외국에서도 임대인의 실거주 목적을 이유로 한 갱신거절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국내와 다른 점은 사전에 서면으로 구체적으로 명시한 사유로만 갱신거절을 인정하거나 임차인에게 일정한 금액을 보상해야 거절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 임차인 보호장치를 함께 두고 있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자가점유율은 57.9%, 자가보유율은 60%로, 전체 가구의 40%, 즉 전 국민 10명 가운데 4명이 집을 빌려 사는 세입자다.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 감염 대유행 상황에서 세계 각국이 경기 부양을 위해 돈을 풀면서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자산 양극화가 심해지고, 전·월세 폭등으로 인한 세입자들의 주거불안이 심각해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여야 대선 후보들이 내놓는 부동산 정책은 세재 완화, 용적률과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등 공급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작 전 국민의 40%에 해당하는 세입자들을 위한 주거정책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세입자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자가 소유를 통한 보다 안정적인 거주일 것이다. 그러나 서울에서 중산층 가구가 평균수준의 주택을 구입하려면 18년 동안 수입 전부를 저축해야 한다. 이런 현실에서 당장 부담이 가능하고도 예측가능한 수준의 임대료를 내는 집에서 장기간 거주하기를 원하는 세입자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법에서 규정하는 계약갱신청구권과 같은 세입자들의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먼저다. 예를 들어 임대인의 실거주 입증책임, 위반 시 손해배상 강화부터 하나씩 해나가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대선 후보들이 세입자들의 주거안정을 위한 진지한 고민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공약을 내놓기를 기대한다.
김대진 변호사·주택세입자 법률지원센터 세입자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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